♣나의 글

어린날의 추억

유수기 2021. 7. 18. 19:11
새파란 하늘에 눈이부시게 하얀 구름이
수락산 자락에 떠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적 여름방학때 외가집에 가던
생각이 난다.
남동생들은 아직 어리니 9살인 나와
네살 많은 언니랑 둘이 엄마한테 차비만
얻어서 당차게 찾아가는 외갓집.
충주에서 버스를 타고 수안보에서 내려
외가집을 가려면 걸어서 산을 하나 넘어야
갈수있는 돌산 이라는곳.
지도를 찾아보니 석산리 라는 곳인가보다.
언니랑 둘이 뜨거운 땡볕아래 산길을 걷다보면
더운것도 잊고 목마르면 산딸기도 따먹고
나리꽃이며 산도라지 꽃도 꺾고
매미소리 친구삼아 돌이 엄청많던 산길을
두시간 남짖 걸었을게다.
마을 이름이 왜 돌산인지 그땐 몰랐다.
거친 돌이 많던 산아래 있는 동네라
돌산 이였을 것을....
지금이야 한시간도 안걸릴 거리지만
그어린 나이에 거친 돌밭 산길을 걸으려니
힘도 들었으련만 그런 기억은 하나도 없다.
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니 별도로 연락없이
땀에 흠뻑젖어 외갓집에 도착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내외분 그리고
네명의 외사촌 동생들이 깜짝놀라 반겨 주시고...
저녁때 넓은 마당에 외삼촌이 모깃불을 피워주시면 평상위에 둥근 두레상을 놓고
외숙모가 저녁밥을 차리신다.
산골 반찬이야 특별할것도 없지만
맛있게 한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은 우루루 집앞 냇가로 달려가
반딧불이도 잡고 장난도 치면서
시원하게 멱을 감고 집으로 오면
마당엔 멍석을 깔고 모기장을 쳐 놓으셨다.
그안에 누워서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찐 옥수수와 감자를 먹으며
외할아버지의 옛날 얘기도 듣고...
가끔 엄마가 해주시던 옛날 얘기와
스토리가 똑같은걸 보면 엄마도 외할아버지
한테 듣고 배웠던 얘기 였던듯....
옛날~~옛날~~~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
엄마와 아들이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그렇게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가물가물 멀어져 가면 어느새 다들
깊은 잠속으로 골아 떨어졌다.
어른들의 하루일과가 시작되어 마당을
분주히 오갔고 매미들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우리들은 일어날 생각도 없이
늦은 잠이 들어 햇살이 얼굴에 따끈히
내려 쬐어야 어쩔수 없이 부시시 일어난다.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깨작깨작 고양이 새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외숙모가 커다란 다라에
감자를 잔뜩 내어주신다.
여자애들 셋은 놋숟가락이 절반쯤 닳아서
감자 까기에 딱 좋은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부지런히 감자를 깎고...
다깎고 나면 얼굴이며 팔에 하얗게 튄
감자 녹말 ..그모습에 서로 마주보며
킥킥 깔깔 거리고 웃는다.
외숙모는 커다란 가마솥에 감자를 넣고
불을때어 포실포실 맛나게 쪄서
큰 그릇에 담고 물 한주전자와 함께
들일 하시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께
새참으로 가져다 주라고 하신다.
밭두렁 나무그늘에 앉아서 새참으로 먹던
그 찐감자 맛이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새참 배달을 하고 집으로 와서는 대문밖
넓은 마당에서 답사리로 만든 커다란
빗자루로 잠자리도 잡고 남자아이들
개구리 잡는데도 따라 다니고 그러다
뱀을 만나면 죽어라 도망을 치기도 하고...
그렇게 놀다 들어오면 외숙모가
솥뚜껑을 뒤집어 불위에 올리고
당원과 소다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노릇하게 구워서 간식으로 주셨다.
아마도 요즘으로 치면 펜케잌 이리라.
그렇게 며칠을 재미있게 지내고 집으로
오는 날...
외할아버지가 장판지를 들추고 빳빳한
오원짜리 지폐를 차비 하라고 두장씩
주신다.
아마도 그때 버스요금이 4~5원 했던것 같다.
차비하고 남은돈 맛있는거 사먹을 생각에
또 그 무더운 산길을 언니랑 둘이 걸어서
수안보 버스정류장으로....
외숙모가 보자기에 싸주신 오이 감자 옥수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9~13살 그나이 그 체구에는 꽤나
무거웠을텐데 언니랑 돌아가며 머리에 이고
들고 낑낑거리며 돌밭 산길을 넘어서 왔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린날의 그런
추억들이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었지
않았나 싶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도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하고 그러다보니 외갓집에
가본지가 수십년전...
외가 쪽 대소사 있을때 가끔 한번씩
다녀왔던것도 꽤나 오래전 이라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이제 나이드니 점점 어린날의 그런 추억들이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아련히 그리워진다.